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한 23세 (문단 편집) ==== 베네치아 총대주교(추기경 론칼리) ==== [[파일:external/2.bp.blogspot.com/Angelo-cardinal-roncalli.jpg]] 안젤로는 1953년(71살)에 [[베네치아]]의 총대주교 겸 사제급 [[추기경]]으로 임명되었다. 베네치아와 [[리스본]]의 총대주교는 가톨릭 교회에서 특별대우를 받았다. 총대주교의 착좌 후 빠른 시기에 추기경으로 서임됨은 물론, 추기경으로 서임되지 않더라도 추기경의 의장을 갖추는 특권을 누렸다.[* [[리스본]]의 총대주교는 교황보다 크기가 작은 [[세디아 제스타토리아]]와 공작 부채를 이용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서 [[베네치아]]의 총대주교를 지내다 교황으로 선출된 인물이 3명이나 있었는데 바로 성 [[비오 10세]], 성 요한 23세, 그리고 [[하느님의 종]] [[요한 바오로 1세]]였다. [[밀라노]] 대교구장이었던 [[바오로 6세]] 또한 교황이 되었다. 베네치아 총대주교 시절 안젤로의 [[문장(그림)|문장]]은 상단부에는 베니치아의 상징인 [[사자]]가, 하단부는 론칼리 집안의 문장인 탑이 있는 것이었다. 문장이 말하는 바는 결국 '''론칼리 집안 출신 베네치아 총대주교'''라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내용인데, 교황이 된 뒤에도 전임자 [[비오 10세]]의 전례를 따라 총대주교 시절의 문장을 거의 그대로 교황 문장으로 따왔다. 사목표어는 'Oboedientia et Pax(순명과 평화)'. 안젤로는 베네치아에서도 예의 자기 성품대로 따뜻하고 온화하게 다른 사람들을, 혹은 문제들을 껴안으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또한 성직에 입문한 뒤로 신자들 속에서 일하는 사목자를 꿈꾸었기 때문에, 외교관 대신 일선 [[교구]]를 맡음을 좋아했다고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안젤로는 [[교황]]이 되리라 예상치 못했다. 베네치아 총대주교가 된 시점에서 이미 70대 노구였으므로, 이를 마지막으로 고향 소토 일 몬테로 은퇴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안젤로의 조카 중에서도 ([[주교]] 삼촌을 둔 영향인지) [[신부(종교)|신부]]가 된 사람이 있었는데, 삼촌이 고향 마을로 은퇴하면 거창한 축제를 열려고 준비하기도 했다. 안젤로는 이 소식을 접하고 조카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럴 필요 없으니 관두라."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